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고등학교 1학년때 CA라고 시간표에 적혔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나는 '독서반'에 들었는데, 지도하는 선생님이 첫 시간에 말씀하셨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책을 읽고 싶은데 마땅한게 없다면 '창작과 비평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을 읽어보면 좋다. 현재는 줄여서 '창비'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한 듯 싶다.

책은 아래와 같은 6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고, 이중 3번째 실린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가 책 제목이다.
의심을 찬양함
고독의 발견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날씨와 생활
지도 중독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책 제목 선택에 대한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책 제목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시집을 뒤지곤 한다. K도 도와준다. 그가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에서 문장을 하나 골라냈다.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그 문장으로부터 표제작의 제목이 생겨났다.

p.226


K라는 이니셜이 궁금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 전체에 저런 이니셜 이름이 많이 등장해서인지 이제는 그냥 소설속 주인공같다.

읽을 때는 왠지 모르게 지겹고 내용도 들어오질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제목만 봐도 내용이 기억난다. 평론가의 해설을 읽고야 알게된 사실을 옮겨본다.
아름답고, 낯설고, 허망하다. 초기 은희경의 소설들은 면도칼 같아서 읽는 중에 여러 번 당신을 긋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것은 기꺼이 즐길 만한 통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소설은 칼이 아닌 척하는 칼이어서 당신은 베이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로 깊이 베이게 될 것이다. 쉽게 알아보기 힘든 어떤 힘이 밀고 들어와, 조용히 빠져나가고, 마침내 피 흐를 때, 비로소 당신은 그서이 칼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면도칼도 못되는 소설들의 중구난방 속에서 오랜만에 느끼는 묵직한 통증에 경의를 표한다. 이 독창적인 소설미학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나. 이 소설의 장르는 그래서 그냥 '은희경'이다.

p.224


늦은 밤 도시의 거리에는 텅 빈 채로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서른이 넘었는데, 나도 아직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바람이 서늘하고 간간이 별도 보였다.

p.183

이건 완전히 내 현재 내 얘기다. 소설속의 주인공이 아주 미미하게라도 나와 내 주변 사람을 닮아 있다. 그런 사람을 통해 작가는 '너네들 지금 이렇게 살고 있거든. 계속 이렇게 살거니?'라고 물어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by 스팟 | 2007/10/05 01:09 | 도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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